Resigned from Samsung

November 28, 2013

12월 31일은 2년 반 동안 다니던 삼성을 그만두는 날입니다. 그동안 재미있는 일도 많았고, 짜증 나는 일도 많았었는데 이 모든 것을 내려두고 이제 다시 삼성의 출입문에 사원증을 찍을 일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전의 퇴사하는 사람은 참 쉽게 그만두는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제가 결심을 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과거 그만두던 사람들도 또한 속으로는 그러했겠죠. 남들이 하는 것은 쉬워 보여도 막상 제가 하려니 쉽지 않네요.

이것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 타인의 업적은 쉽게 성취한 것으로 보이고 내 업적은 갖은 노력을 다해서 얻어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갖은 고생을 해가며, 밤새 머리를 긁적이며 고심하여 만들어낸 결과일 겁니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작업환경입니다. 무계획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계획과 개발 중 급변하는 목표 성능 등 많은 부분이 체계적이지 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구과제라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성능 목표치와 일정을 잡고, 그 과제가 양산과제로 바뀌어도 결국 일정은 변하지 않았고, 일정을 지키기 위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인해 성능이 떨어지자 비난은 개발한 당사자에게 향했습니다. 비록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되고 시장에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 과정이 제게는 전혀 체계적이지 않게 보였습니다.

삼성에서 일하는 동안 맘에 들지 않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일하는 그 자체는 재미있었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설계하고 어떻게 성능을 높일지 토의하고 생각하고 구현하고 예측하고 결과를 보고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 재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삼성이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위에서 말한 문제가 고쳐지기엔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아쉬움을 접고 그만둘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2년 반 동안 해왔던 일을 통해 제가 성장하였고 많은 경험을 쌓은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적어도 헛된 시간은 보내지 않았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길이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삼성에서의 2년 반은 쉽게 잊지는 못할 겁니다.

2011년 7월 산청연수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