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ewell #2

February 13, 2007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오면서 필히 다짐한 것이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워홀러들이 다짐하는 내용이겠지만 바로 ‘한국사람을 피해야지!’ 였다. 하지만 막상 캐나다를 와보니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진 곳(밴쿠버, 토론토, 밴프, 캘거리, 기타 등등) 뿐만이 아니라 전혀 듣지도 못했던 도시에까지 한국사람은 살아가고 있었다. 추운 북쪽지방에서부터 비가 계속 내리는 밴쿠버까지 그 어느곳에서도 한국사람을 피할 길은 없었다. 만일 한국 사람을 피하고자 한다면 캐나다 사람들조차 이름을 잘 모르는 시골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어떻게 워킹+홀리데이 를 즐길 수 있겠는가.

결국 나는 캐나다에 와서도 한국 사람들과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과 여행도 다니며,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하면서 여러가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다들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나, 현재 내가 하는 일등은 모든 워홀러가 다 비슷하다. 워홀러로 와서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것은 극히 어렵다. 매우 뛰어난 영어 대화 기술이 있지 않는 한, 대부분은 방청소, 키친, 접시닦이, 카운터 등의 직업으로 돈을 번다. 모두 비슷 비슷한 직업, 그리고 과거를 묻지않는 것. 이러한 상황이 모든 사람을 동일한 눈으로 보게 만든다. 그 사람의 능력, 배경, 집안, 학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 사람 자체를 보게 된다.

또한 외국에 나오게 되면서 나약한 마음이 들게 된다. 한국에서는 어느 곳을 가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덜 하지만, 외국에서는 어느 곳 하나 의지할 곳 없는 정말 말 그대로 ’외국인 노동자’의 신세가 워홀러다. 이러한 곳에서 피할 수 없는 한국인들을 만나고, 또한 서로 의지하게 된다. 이 때부터 어떤 사람에게는 비극이, 어떤 사람에게는 기쁨이 찾아온다. 슬픔이자 기쁨인 사랑이….

벌써 몇번의 인연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오기 바로 이전에 사람들이 만나서 인근 캘거리로 떠났다고 들었다. 아직까지 그 커플(x2)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슬픔만 가득한 인연들을 보아왔다. 만나고 헤어짐으로 서로 상처받고 치유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밴프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서로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수습하지 못한채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보아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미 본연의 목적은 잊어버린지 오래다. 계획한 일들은 틀어지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상처만 안고가는 1년이 되어버린다.

인연 ,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처음의 다짐, 계획, 희망, 꿈, 설레임 을 버려버리는가…

2013-06-07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때의 저는 참 생각이 짧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지내면서 그 생각이 바뀌고 계획이 변경되는 것이 굳은 심지가 없다고만 생각했었네요. 그 때 계획을 바꾸고 사람을 만나고 했던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의 저는 당돌하게도 “그런 삶이 시간이 지나도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네요. 글을 다시 읽으며 저의 부족한 점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