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자동차

May 5, 2017

보통은 대놓고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 이 글은 정치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변화를 바라는 많은 상황에 항상 보이는 일이라 공유해 봅니다.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지 도약일 수 없다는 것. 느릴지라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습니다.

부산행 자동차와 “일부” 진보주의자의 탈현실적 행태

나는 원리주의적인 이념의 소유자이지만 동시에 과정주의자이기도 하다. (이 사실이 내게는 일종의 균형감각으로 역할을 한다.) 이 대목에서 과정주의라 함은 무엇인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목표를 향하는 움직임이 필요함과 동시에 그 목표 달성을 위한 단계가 물리적으로 존재함을 인지하고 그 각각의 단계를 존중하는 방식의 사유를 뜻한다. 예컨대, 서울에서 부산을 가기 위해서는 부산으로 향하는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출발한 지점이 부산에서 수백킬로 떨어진 서울이라는 사실과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천안과 대전, 대구를 거쳐야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물리적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정주의적 사유에 해당한다.

그런데 분명히 자동차가 서울에서 출발해서 부산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천안이냐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면서 차에서 내리겠다고 선언하는 이들이 있다. 기억을 되돌이켜 보면 초등학생이던 시절, 부모님과 함께 외가집에 가던 길에서 내가 그랬다. 외가가 부산은 아니었고 대전이었는데, 나는 차가 막히면 대충 오산 쯤 부터 그런 땡깡을 부렸었던 것 같다. 나는 철이 없는 어린아이였고, 외가집에 가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야할 의무나 책임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땡깡을 부렸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자동차가 위치해 있는 곳이 부산이 아니라는 이유로’ 움직이는 자동차에서 내리겠다고 선언하는 이들의 사유를 초등학생 시절 내가 부렸던 땡깡과 거의 차이가 없는 ’어린아이식 탈현실주의’로 이해한다. 더불어 그런 ’어린아이식 탈현실주의’적 사유의 소유자들이 말하는 부산에 대한 의지, 그러니깐 직접 차를 운전하지 않는 상태에서 부산에 가야한다는 그 의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서울에 머무르지 않고, 또 개성이나 평양으로 향하지 않고 실제로 부산으로 가는 것이다. 부산에 가기 위해서는 차가 막혀도, 도로가 비포장 도로여도, 아직 겨우 천안을 지나고 있을 뿐이라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부산으로 움직여야 한다. (내 최종 목적지는 부산이 아니라 부산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하는 대마도이기는 하다.)

<문재인의 낙선을 바란다는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 인식하는 이들’에 대한 상념>

출처: Min-soo Kwack on Facebook